정보의 바다

나폴레옹은 정말 키가 작았나요?

동히지지 2024. 12. 11. 08:40
반응형

19세기 초,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4세는 저명한 예술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에게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에 승리를 거둔 마렝고 전투를 기념하는 그림을 의뢰하였습니다.

다비드가 완성한 작품인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Napoleon Crossing the Alps)〉(1801)은 나폴레옹이 험난한 절벽 위에서 말에 올라탄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머리카락과 망토는 극적으로 바람에 흩날리고 있으며, 단호한 표정으로 정상을 가리키며 병사들을 독려하는 모습이 돋보입니다.

나폴레옹은 이 멋진 초상화를 보고 매우 감명받았고, 다비드에게 동일한 작품 세 점을 추가로 의뢰하기도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선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으며, 자신의 명성을 구축하거나 확대하는 데 적극적이었습니다. 황제로 있을 때는 프랑스 언론을 검열하고, 유배 중에는 자신의 생애를 구술하는 등 그의 이미지를 통제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통제할 수 없었던 하나의 유독 성가신 문제는 바로 그가 "키가 작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이 루머는 그의 생전에 널리 퍼졌으며, 그가 사망한 후 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사람들은 나폴레옹이 왜 중요한 인물인지 정확히 알지 못할 수 있지만, 대개 그가 "키가 작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나폴레옹에 대해 가장 기억하는 이 사실은, 실상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폴레옹은 "르 프티 카포랄(Le Petit Caporal)", 즉 "작은 하사"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이는 그의 키를 반영한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는 병사들이 나폴레옹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부르던 별명이었습니다. 실제로, 다비드의 말을 탄 초상화(〈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를 비롯한 당대의 많은 프랑스 회화는 나폴레옹이 키가 작지 않고 평균 신장임을 암시합니다.

해당 그림에서도 그는 말과 균형 잡힌 비율을 보이고 있으나, 근처에 다른 인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 확실히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 1804년 12월 2일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열린 나폴레옹 황제의 봉헌식과 조세핀 황후의 대관식

다비드의 다른 초상화 역시 나폴레옹의 키를 비교할 만한 뚜렷한 근거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황제 나폴레옹의 대관식과 황후 조제핀의 대관식〉(1806–07)에서는 나폴레옹이 계단 위에서 황후에게 관을 씌우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다른 인물과의 신장 비교가 어렵습니다. 또한, 〈투일리궁에서 공부하는 나폴레옹〉(1812)에서는 나폴레옹이 홀로 책상에 서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다비드의 제자인 앙투안 장 그로(Antoine-Jean Gros)의 작품은 다른 인물과 같은 평면에서 비교 가능한 장면을 제공합니다.

〈1799년 3월 11일 자파에서 페스트에 걸린 병사들을 방문하는 나폴레옹〉(1804)은 나폴레옹이 자신의 병사들을 돌보는 이집트 원정 중의 한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나폴레옹은 페스트 환자의 몸을 만지며 주변 인물들과 대조적으로 영웅적 모습을 보입니다. 그림 속 나폴레옹은 병사들과 비슷한 키를 보이며, 키가 평균적인 인물로 묘사됩니다.

따라서 이들 작품을 통해 본다면, 나폴레옹의 키는 당대 평균 수준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그다지 관대하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예술가들은 나폴레옹을 왜소하게 묘사했습니다. 약 1803년경, 유명한 풍자 만화가 제임스 길레이(James Gillray)는 어린아이 같은 나폴레옹을 닮은 “리틀 보니(Little Boney)”라는 캐릭터를 소개했습니다.

처음에 길레이는 나폴레옹의 버릇없음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만화 〈광적인 발작—혹은—격렬한 발작 중인 리틀 보니(Maniac ravings—or—Little Boney in a Strong fit)〉에서는 나폴레옹이 가구를 뒤엎고 “영국 국민(British Nation)”과 “런던 신문(London Newspapers)”에 대해 통탄하며 “오 오 오, 복수다! 복수다!”라고 외치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그 후 길레이는 나폴레옹을 더 어린아이처럼 보이도록 작은 모습으로 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컨대 나폴레옹이 거대한 부츠를 신은 채, 한 출처에 따르면, “몸집을 압도하는 커다란 이각모(bicorne)를 쓰고 강하게 말하려 애쓰는 모습”이나 “걸을 때 땅을 질질 끌며 큰 칼집에서 칼을 꺼내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키가 작게 그려지는 캐릭터로 자리 잡았습니다.

아이작 크루익샹크(Isaac Cruikshank)라는 또 다른 만화가는 〈황후의 소망 또는 당황한 보니(The Empress’s wish or Boney Puzzled!!)〉에서 나폴레옹을 아내와 병사들의 절반 정도 키로 그렸습니다. 이렇게 왜소하게 묘사된 나폴레옹의 모습은 영국 신문에서 황제를 표현하는 표준이 되었습니다.

영국인들이 왜 나폴레옹이 키가 작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는지, 그리고 그것이 사실인지 확실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이작 크루익샹크의 묘사에는 어느 정도 사실이 담겨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아마 그의 병사들보다 훨씬 키가 작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러 자료에 따르면, 나폴레옹의 엘리트 근위병들은 대부분의 프랑스 남성들보다 키가 컸기 때문에 나폴레옹은 실제 키보다 더 작아 보였을 것입니다.

1812년 튀일리 궁전의 서재에 있는 나폴레옹 황제

하지만 그의 사망 진단서를 기반으로 해석한 결과, 나폴레옹의 사망 당시 키는 약 5피트 2인치(1.58m)에서 5피트 7인치(1.7m) 사이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19세기 프랑스에서 사용된 프랑스식 인치(French inch)와 현대의 인치 측정 단위 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프랑스식 인치는 약 2.71cm였던 반면, 현재의 인치는 약 2.54cm입니다. 이에 따라, 나폴레옹의 실제 키는 5피트 6인치(1.68m)나 5피트 7인치(1.7m)에 더 가까웠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범위는 21세기 기준으로는 작게 느껴질 수 있지만, 19세기 당시에는 일반적인 키였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프랑스 남성의 키는 5피트 2인치(1.58m)에서 5피트 6인치(1.68m) 사이였으므로, 나폴레옹은 평균적이거나 오히려 더 큰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의 사망 진단서는 그가 19세기 프랑스 남성의 평균 키보다 더 컸을 가능성을 시사하지만, 영국의 풍자 만화, 별명, 그리고 기타 소문들은 나폴레옹이 키가 작았다는 이미지를 굳어지게 했습니다. 이러한 인상은 21세기까지도 이어졌으며, 이는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영웅적인 초상화로도 결코 바꿀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반응형